[이윤학의 삼코노미]맑은 날은 왜 오래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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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작성일26-08-06 19:26 조회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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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 가운데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맑고 쾌적한 날은 얼마나 될까. 기상 통계를 보면 일 년의 10분의 1 남짓인 30~40일에 불과하다. 폭염과 한파, 눅눅한 장맛비와 미세먼지가 일상의 대부분을 채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지나간 날을 회상하며 “그때 참 날씨가 좋았지”라고 말하곤 한다. 눈부셨던 며칠의 기억이 수많은 불쾌했던 날들을 마법처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은 객관적인 수치를 기입하는 회계장부가 아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과거 경험을 산술적으로 합산해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뇌는 전체의 평균이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절정(Peak)’의 순간과 마지막 ‘결말(End)’을 중심으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이른바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이다. 여행 내내 피곤했어도 마지막 날 바라본 노을이 아름다우면 좋은 여행으로 기억되고, 오랜 관계가 평온했어도 마지막 이별이 거칠면 관계 전체가 아프게 남는다. 기억은 삶의 회계장부가 아니라, 절정과 결말을 중심으로 편집된 한 편의 영화에 가깝다.
생물학적 진화의 관점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의 기억이 과거를 정확히 복원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미래의 행동을 이끌기 위해 진화했을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사냥에 성공했던 강렬한 순간을 기억해야 다시 사냥에 나서고, 사랑의 황홀했던 기억이 남아야 다시 관계를 맺는다. 유전자는 인간에게 행복을 계속 주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했는지 모른다.
문제는 이 고대의 생존 기억 메커니즘이 현대 금융시장과 만날 때 치명적인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투자자의 뇌는 수백 일의 지루한 횡보와 바닥 다지기보다 단 며칠간의 폭발적인 상승을 훨씬 깊게 기억한다. 주식시장에는 ‘3일 천장, 100일 바닥’이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환호 속에 고점을 만드는 시간은 지극히 짧고, 하락 후 지루하게 바닥을 다지는 시간은 길다. 하지만 투자자의 관념 속에선 이 비율이 거꾸로 뒤집힌다. 백 일의 지루함은 흐릿해지고 단 며칠의 눈부신 상승세만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는다.
강렬한 상승장에서 계좌가 불어나는 경험은 투자자에게 지우기 힘든 절정의 기억을 선사한다. 주변은 성공담으로 가득 차고 미디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언한다. 그 짧은 환희를 경험하고 나면 투자자는 상승이라는 예외적 사건을 시장의 일상적 상태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주식은 장기적으로 오른다’는 합리적 명제는 ‘주식은 늘 오른다’는 위험한 맹신으로 변질된다. 상승은 당연한 정상이고 하락은 일시적 차질에 불과하다는 착각이 시장을 지배한다.
하지만 주가는 늘 상승하지 않는다. 상승 추세 안에서도 조정은 반복되고, 좋은 기업의 주가도 가격이 지나치게 앞서가면 급락할 수 있다. 기업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더라도 투자자의 수익은 사라질 수 있다. 주식은 기업의 미래를 사는 일이지만, 아무 가격에나 그 미래를 사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금융 세계의 특징으로 ‘금융 기억의 극단적 단기성’을 지적했다. 시장은 과거의 실패를 놀라울 만큼 빨리 잊는다. 버블이 무너질 때마다 사람들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교훈은 낡은 사고로 취급된다. 그리고 다음 상승장에서는 과거의 투기가 ‘새로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카너먼과 도킨스, 갤브레이스의 통찰을 연결해보면 투자자가 왜 매번 동일한 덫에 걸려드는지 명확해진다. 인간은 절정을 중심으로 기억을 편집하고, 진화적 본능은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위험한 행동을 개시하며, 금융시장은 실패의 기억을 너무나 손쉽게 지워버린다. 우리는 짧은 상승의 기쁨은 길게 늘려 기억하고 지루한 하락의 고통은 조급하게 잊어버린다. 수익은 자신의 탁월한 통찰력 덕분이라 믿고 손실의 시간은 우연히 닥친 악재로 돌려버린다.
맑은 날의 햇살은 귀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눈부신 햇살이 계속될 것이라 믿고 우산을 버려서는 안 된다. 상승장의 환희를 누리는 것 못지않게 그 상승이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훌륭한 투자자는 하늘이 맑을 때도 언젠가 날씨가 바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일 년 중 구름 없이 완벽하게 맑은 날이 손에 꼽히듯, 주식시장이 안겨주는 환희의 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짧은 맑은 날을 영속적인 기후로 착각하지 않는 지혜다. 시장은 늘 오르지 않는다. 다만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기억이 짧은 투자자에게 같은 교훈을 계속 되풀이할 뿐이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 2일, 인천 송도의 최고기온은 36도에 달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펜타포트)이 열리는 인천 연수구 송도달빛축제공원 안의 체감온도는 이보다 훨씬 높게 느껴졌다.
사람이 몰리는 무대 앞 스탠딩 자리는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혔다. 관객들은 농사용 차양모자부터 손수건, 복면까지 동원해 더위를 견뎠다. 무대 사이 발사되는 물대포와 소방 살수차의 등장에 몇몇 관객이 “와 살겠다!”며 소리쳤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온열질환으로 들것에 실려 가는 일도 수차례 목격됐다. 무대 위 아티스트들은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객석을 향해 “너무 덥다”며 “물을 챙겨 마시라”고 당부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 펜타포트는 화려한 라인업만큼 찌는 듯한 더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7월31일~8월2일 사흘간 열린 ‘제21회 2026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는 15만명(주최 측 추산)의 관객이 찾았다. 공연을 앞둔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기 위한’ 준비물들을 온라인상에 공유했다. 관객들은 만반의 준비에도 공연 중간 살수차를 좇고 등목을 하는 등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분주한 건 주최 측도 마찬가지였다. 예년 대비 구급차와 의료시설을 확충하고 냉방시설인 ‘쿨존’ 내 행사도 더했다. 입장객들의 탈수를 막기 위해 생수 9만병을 배포했다. 하지만 사흘간 최소 3명이 온열질환으로 응급실로 이송됐다. 더운 여름의 록 음악 축제는 흔히 낭만이라 여겨지지만, 기후변화로 점점 더 뜨거워지는 기온에 관객도 주최 측도 폭염을 견디는 형국이었다. 공연이 열린 3일간 늦은 오후 시간까지도 기온은 30도를 웃돌았다. 지난 1일 헤드라이너(주요 출연자)인 매시브어택과 2일 픽시즈의 공연이 진행된 밤 9시에도 관객들은 더위에 지쳐 상기된 얼굴로 스탠딩석을 벗어나거나 쿨존에 누워 열기를 식히기도 했다.
펜타포트는 지난해 대비 의료부스를 5개에서 7개로 늘렸고 구급차도 6대에서 7대로 증편했다. 쿨존 규모는 884평(약 2922㎡)으로, 지난해 수준을 유지했다. 주최 측은 2024년 최대 1500명 수준이었던 쿨존 수용인원을 초대형 구조막을 이용해 3500명까지 늘렸다. 김명훈 인천관광공사 과장은 “지난해 쿨존 확대 후 2024년 대비 온열질환자 수가 74% 감소했다”며 “올해는 실내 콘텐츠인 팟캐스트 프로그램 ‘펜타 온에어’를 신설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폭염을 막기엔 쿨존도 역부족이었다.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오후 2시쯤 쿨존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림잡아 세어봐도 400여명이 모인 이곳에 에어컨 10여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갔지만 실내온도는 27도를 웃돌았다. 공연장에 그늘이 많지 않아 관객들이 쿨존으로 몰리는 모습이었다. 2022년부터 펜타포트를 찾았다는 구은혜씨(32)는 그늘막 아래 자리를 잡기 위해 오전 11시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구씨는 “공연 관람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생수를 얼려두었다”며 보랭백을 들어 보였다. 이어 “오후 2시부터는 쿨존에 들어가야 생존할 수 있다”고 했다. 관객들은 무대가 끝나자마자 개수대로 달려가 몸에 물을 끼얹었다. 동생과 함께 펜타포트에 처음 왔다는 황수정씨(29)는 세수를 한 뒤 여동생의 등목을 도왔다. 황씨는 “쿨패치에 얼음, 선풍기도 구매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정말 덥다”고 말했다. 2023~2025년은 기상청 관측 이래 연평균 기온이 상위 1~3위를 기록한 해였다. 일부 관객은 페스티벌 날짜나 장소를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한다. 비슷한 시기 개최되는 일본의 대형 페스티벌 ‘후지 록 페스티벌’(후지록)과 ‘서머소닉’에 비해서도 펜타포트의 더위 문제가 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월 중순 열리는 후지록은 공연장이 산 중턱에 마련돼 상대적으로 선선한 환경에서 관람할 수 있다. 8월 중순 도쿄와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서머소닉은 실내외 공연장을 동시에 운영해 관객이 더위를 피하도록 한다. 이에 비해 펜타포트는 공원에서 이뤄지는 전면 야외 행사로 그늘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김 과장은 “폭염 등 여러 사유로 장소와 일자 변경을 고민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는 “후지록 외에도 다양한 아시아 페스티벌과 협의해 아티스트 라인업을 짜고 있다”며 “날짜를 옮길 경우 스타 아티스트 출연이 어려워질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국내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유럽·북미권 아티스트들은 내한 공연을 할 때 다른 동아시아 페스티벌 여러 곳을 순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어 “쿨존을 마련하고 생수 반입 개수를 제한하지 않는 등 더위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펜타포트의 더위 문제는 기후변화 속 야외 축제가 공통으로 마주한 과제다. 일부 해외 페스티벌 등에서는 폭염을 기후위기 결과로 보고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기후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밴드 콜드플레이가 월드투어 당시 LED 팔찌를 재활용하고, 생수 반입을 허용하는 대신 급수대를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1일 펜타포트 무대에 선 영국의 트립합 밴드 매시브어택은 2024년 공연 때 푸드코트의 모든 음식을 비건식으로 제공하고 주차장을 없애며 역대 음악 이벤트 사상 가장 낮은 탄소배출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펜타포트의 낭만은 여전히 뜨거웠다. 관객들은 지친 모습을 보이다가도 무대가 시작되면 다시 웃으며 뛰고 몸을 부딪쳤다. 하지만 이번 축제는 기후변화로 폭염이 일상이 된 지금, 야외 음악 축제가 더 이상 음악만 준비해서는 치를 수 없는 행사가 됐음을 보여줬다.
인간의 기억은 객관적인 수치를 기입하는 회계장부가 아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과거 경험을 산술적으로 합산해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뇌는 전체의 평균이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절정(Peak)’의 순간과 마지막 ‘결말(End)’을 중심으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이른바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이다. 여행 내내 피곤했어도 마지막 날 바라본 노을이 아름다우면 좋은 여행으로 기억되고, 오랜 관계가 평온했어도 마지막 이별이 거칠면 관계 전체가 아프게 남는다. 기억은 삶의 회계장부가 아니라, 절정과 결말을 중심으로 편집된 한 편의 영화에 가깝다.
생물학적 진화의 관점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의 기억이 과거를 정확히 복원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미래의 행동을 이끌기 위해 진화했을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사냥에 성공했던 강렬한 순간을 기억해야 다시 사냥에 나서고, 사랑의 황홀했던 기억이 남아야 다시 관계를 맺는다. 유전자는 인간에게 행복을 계속 주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했는지 모른다.
문제는 이 고대의 생존 기억 메커니즘이 현대 금융시장과 만날 때 치명적인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투자자의 뇌는 수백 일의 지루한 횡보와 바닥 다지기보다 단 며칠간의 폭발적인 상승을 훨씬 깊게 기억한다. 주식시장에는 ‘3일 천장, 100일 바닥’이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환호 속에 고점을 만드는 시간은 지극히 짧고, 하락 후 지루하게 바닥을 다지는 시간은 길다. 하지만 투자자의 관념 속에선 이 비율이 거꾸로 뒤집힌다. 백 일의 지루함은 흐릿해지고 단 며칠의 눈부신 상승세만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는다.
강렬한 상승장에서 계좌가 불어나는 경험은 투자자에게 지우기 힘든 절정의 기억을 선사한다. 주변은 성공담으로 가득 차고 미디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언한다. 그 짧은 환희를 경험하고 나면 투자자는 상승이라는 예외적 사건을 시장의 일상적 상태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주식은 장기적으로 오른다’는 합리적 명제는 ‘주식은 늘 오른다’는 위험한 맹신으로 변질된다. 상승은 당연한 정상이고 하락은 일시적 차질에 불과하다는 착각이 시장을 지배한다.
하지만 주가는 늘 상승하지 않는다. 상승 추세 안에서도 조정은 반복되고, 좋은 기업의 주가도 가격이 지나치게 앞서가면 급락할 수 있다. 기업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더라도 투자자의 수익은 사라질 수 있다. 주식은 기업의 미래를 사는 일이지만, 아무 가격에나 그 미래를 사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금융 세계의 특징으로 ‘금융 기억의 극단적 단기성’을 지적했다. 시장은 과거의 실패를 놀라울 만큼 빨리 잊는다. 버블이 무너질 때마다 사람들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교훈은 낡은 사고로 취급된다. 그리고 다음 상승장에서는 과거의 투기가 ‘새로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카너먼과 도킨스, 갤브레이스의 통찰을 연결해보면 투자자가 왜 매번 동일한 덫에 걸려드는지 명확해진다. 인간은 절정을 중심으로 기억을 편집하고, 진화적 본능은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위험한 행동을 개시하며, 금융시장은 실패의 기억을 너무나 손쉽게 지워버린다. 우리는 짧은 상승의 기쁨은 길게 늘려 기억하고 지루한 하락의 고통은 조급하게 잊어버린다. 수익은 자신의 탁월한 통찰력 덕분이라 믿고 손실의 시간은 우연히 닥친 악재로 돌려버린다.
맑은 날의 햇살은 귀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눈부신 햇살이 계속될 것이라 믿고 우산을 버려서는 안 된다. 상승장의 환희를 누리는 것 못지않게 그 상승이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훌륭한 투자자는 하늘이 맑을 때도 언젠가 날씨가 바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일 년 중 구름 없이 완벽하게 맑은 날이 손에 꼽히듯, 주식시장이 안겨주는 환희의 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짧은 맑은 날을 영속적인 기후로 착각하지 않는 지혜다. 시장은 늘 오르지 않는다. 다만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기억이 짧은 투자자에게 같은 교훈을 계속 되풀이할 뿐이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 2일, 인천 송도의 최고기온은 36도에 달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펜타포트)이 열리는 인천 연수구 송도달빛축제공원 안의 체감온도는 이보다 훨씬 높게 느껴졌다.
사람이 몰리는 무대 앞 스탠딩 자리는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혔다. 관객들은 농사용 차양모자부터 손수건, 복면까지 동원해 더위를 견뎠다. 무대 사이 발사되는 물대포와 소방 살수차의 등장에 몇몇 관객이 “와 살겠다!”며 소리쳤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온열질환으로 들것에 실려 가는 일도 수차례 목격됐다. 무대 위 아티스트들은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객석을 향해 “너무 덥다”며 “물을 챙겨 마시라”고 당부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 펜타포트는 화려한 라인업만큼 찌는 듯한 더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7월31일~8월2일 사흘간 열린 ‘제21회 2026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는 15만명(주최 측 추산)의 관객이 찾았다. 공연을 앞둔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기 위한’ 준비물들을 온라인상에 공유했다. 관객들은 만반의 준비에도 공연 중간 살수차를 좇고 등목을 하는 등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분주한 건 주최 측도 마찬가지였다. 예년 대비 구급차와 의료시설을 확충하고 냉방시설인 ‘쿨존’ 내 행사도 더했다. 입장객들의 탈수를 막기 위해 생수 9만병을 배포했다. 하지만 사흘간 최소 3명이 온열질환으로 응급실로 이송됐다. 더운 여름의 록 음악 축제는 흔히 낭만이라 여겨지지만, 기후변화로 점점 더 뜨거워지는 기온에 관객도 주최 측도 폭염을 견디는 형국이었다. 공연이 열린 3일간 늦은 오후 시간까지도 기온은 30도를 웃돌았다. 지난 1일 헤드라이너(주요 출연자)인 매시브어택과 2일 픽시즈의 공연이 진행된 밤 9시에도 관객들은 더위에 지쳐 상기된 얼굴로 스탠딩석을 벗어나거나 쿨존에 누워 열기를 식히기도 했다.
펜타포트는 지난해 대비 의료부스를 5개에서 7개로 늘렸고 구급차도 6대에서 7대로 증편했다. 쿨존 규모는 884평(약 2922㎡)으로, 지난해 수준을 유지했다. 주최 측은 2024년 최대 1500명 수준이었던 쿨존 수용인원을 초대형 구조막을 이용해 3500명까지 늘렸다. 김명훈 인천관광공사 과장은 “지난해 쿨존 확대 후 2024년 대비 온열질환자 수가 74% 감소했다”며 “올해는 실내 콘텐츠인 팟캐스트 프로그램 ‘펜타 온에어’를 신설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폭염을 막기엔 쿨존도 역부족이었다.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오후 2시쯤 쿨존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림잡아 세어봐도 400여명이 모인 이곳에 에어컨 10여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갔지만 실내온도는 27도를 웃돌았다. 공연장에 그늘이 많지 않아 관객들이 쿨존으로 몰리는 모습이었다. 2022년부터 펜타포트를 찾았다는 구은혜씨(32)는 그늘막 아래 자리를 잡기 위해 오전 11시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구씨는 “공연 관람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생수를 얼려두었다”며 보랭백을 들어 보였다. 이어 “오후 2시부터는 쿨존에 들어가야 생존할 수 있다”고 했다. 관객들은 무대가 끝나자마자 개수대로 달려가 몸에 물을 끼얹었다. 동생과 함께 펜타포트에 처음 왔다는 황수정씨(29)는 세수를 한 뒤 여동생의 등목을 도왔다. 황씨는 “쿨패치에 얼음, 선풍기도 구매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정말 덥다”고 말했다. 2023~2025년은 기상청 관측 이래 연평균 기온이 상위 1~3위를 기록한 해였다. 일부 관객은 페스티벌 날짜나 장소를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한다. 비슷한 시기 개최되는 일본의 대형 페스티벌 ‘후지 록 페스티벌’(후지록)과 ‘서머소닉’에 비해서도 펜타포트의 더위 문제가 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월 중순 열리는 후지록은 공연장이 산 중턱에 마련돼 상대적으로 선선한 환경에서 관람할 수 있다. 8월 중순 도쿄와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서머소닉은 실내외 공연장을 동시에 운영해 관객이 더위를 피하도록 한다. 이에 비해 펜타포트는 공원에서 이뤄지는 전면 야외 행사로 그늘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김 과장은 “폭염 등 여러 사유로 장소와 일자 변경을 고민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는 “후지록 외에도 다양한 아시아 페스티벌과 협의해 아티스트 라인업을 짜고 있다”며 “날짜를 옮길 경우 스타 아티스트 출연이 어려워질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국내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유럽·북미권 아티스트들은 내한 공연을 할 때 다른 동아시아 페스티벌 여러 곳을 순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어 “쿨존을 마련하고 생수 반입 개수를 제한하지 않는 등 더위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펜타포트의 더위 문제는 기후변화 속 야외 축제가 공통으로 마주한 과제다. 일부 해외 페스티벌 등에서는 폭염을 기후위기 결과로 보고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기후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밴드 콜드플레이가 월드투어 당시 LED 팔찌를 재활용하고, 생수 반입을 허용하는 대신 급수대를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1일 펜타포트 무대에 선 영국의 트립합 밴드 매시브어택은 2024년 공연 때 푸드코트의 모든 음식을 비건식으로 제공하고 주차장을 없애며 역대 음악 이벤트 사상 가장 낮은 탄소배출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펜타포트의 낭만은 여전히 뜨거웠다. 관객들은 지친 모습을 보이다가도 무대가 시작되면 다시 웃으며 뛰고 몸을 부딪쳤다. 하지만 이번 축제는 기후변화로 폭염이 일상이 된 지금, 야외 음악 축제가 더 이상 음악만 준비해서는 치를 수 없는 행사가 됐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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