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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의 한뼘 양생]여성할당제, 형식 아닌 비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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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작성일25-07-21 13:02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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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초등입시반’ 같은 아동학대 수준의 경쟁교육이 사라지고, 가난한 노인이 고립된 채 살다가 6개월 만에 발견되는 일이 없으며, 외모나 성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거나 놀림거리가 되지 않고, 노동자가 혼자 일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몸이 조각나는 일이 더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정권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갸우뚱한 순간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이었다. 정부는 그 이유를 “진영에 상관없이 탕평인사를 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나는 이 결정이 ‘여성 할당을 형식적으로 채우되 비중 낮은 부처에 배치하는’ 오래된 관행의 반복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여성이 동시에 홀대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개인적 감상일 수도 있다.
의구심이 불쾌감으로 바뀐 계기는 강선우와 이진숙 두 장관 후보자의 지명이었다. 지금 교육 현장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것, 학생과 교사 모두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선택해야 할 정도로 고통받는다는 것, 그것이 “1등만 살아남는다”는 극단적인 경쟁 구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러니 ‘서울대=최고’라는 기존 서열 구조를 더 굳히고 능력주의 신화를 반복 재생산할 뿐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따위로는 난파선 같은 교육 현실을 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진숙을? 이것도 혹시, 이 정권의 교육 홀대와 여성할당제의 형식적 적용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 아닐까?
압권은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 지명이었다. 알다시피, 이준석과 윤석열이 합작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는 단지 하나의 공약이 아니라, 혐오를 체계화하고 적대를 정당화하며, 정치 언어를 내전의 언어로 바꿔놓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내전을 수습하겠다고 선언한 국민주권정부는 그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하지 않을까? 여성가족부의 실질적 복원은 그 출발점이고, 비전과 언어 그리고 제도를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과 책임감이 필요할 것이다. 강선우 후보자에게 그것이 있는가?
잠시 되돌아보자. 여성부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에 신설됐고, 첫 번째 숙원 사업은 호주제 폐지였다. 물론 당시 여론은 양분돼 있었다. 전국의 유림들은 여전히 ‘미풍양속 사수’를 외치며 폐지에 결사반대했다. 그러나 일제 잔재에 불과하면서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잘 만나지도 않는 시아버지나 한 살짜리 아들이 나의 ‘호주’가 되는 이 남성 혈통 중심주의에 찬성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식도 점차 확산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호주제 폐지를 주요 국정 과제로 내걸었다. 그리고 초기 내각에 네 명의 여성 장관을 과감히 기용했다. 법무부 강금실, 환경부 한명숙, 보건복지부 김화중, 여성부 지은희. 그리고 1대 여성부 장관이었던 한명숙의 백업과 강금실·지은희 투톱의 환상적 컬래버를 통해 호주제 폐지가 추진됐다. 대통령의 명확한 비전과 적재적소의 인사가 어우러져 성평등 사회의 새로운 국면이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2000년대 초 호주제 폐지에 해당하는 성평등 이슈는 무얼까? 누가 봐도 차별금지법 제정과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다. 그런데 왜 지금 정권은 이 문제들을 과감한 리더십으로 추진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로 뭉개고 있는 걸까? 나는 그 말이 늘 “기득권 눈치를 보겠습니다”로 번역돼 들린다.
강선우와 이진숙 두 장관 후보자는 사퇴하거나 낙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여성관과 성인지 감수성이다.
여성할당제란 단순히 생물학적 여성을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평등 구조를 재편하려는 제도적 개입이어야 한다. 함께 일하는 여성은 ‘따뜻한 엄마’가 아니라, 동료이자 시민이어야 한다. 부디 이 정부의 성공을 빈다.
대전에서 도서관을 무대로 한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대전시는 시민들의 일상 속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동대전도서관에서 오는 12월까지 주말 공연 프로그램 ‘오가다’를 운영한다고 20일 밝혔다.
도서관을 오가는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도서관 1층 로비와 야외무대, 강당 등 열린 공간에서 성악, 재즈, 국악,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펼쳐진다.
오는 26일 도서관 1층 로비에서 진행되는 첫 공연에서는 ‘시를 듣는 시간’을 주제로 소프라노 이명윤과 바리톤 김수한이 피아니스트 최윤정의 연주에 맞춰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다양한 가곡을 선보인다.
다음달 9일에는 재즈 보컬 정지수와 밴드 ‘바로크 인 블루’가 함께하는 ‘재즈&클래식’ 공연이 펼쳐지고, 9월과 10월에는 샌드아트와 버블쇼 등 가족 단위 도서관 이용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들도 마련돼 있다.
동대전도서관 관계자는 “시민들이 도서관을 단순한 열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문화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오가다 공연을 준비했다”며 “일상 속에서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대전도서관은 대전 제2시립도서관으로 동구 가양동에 지하 1층, 지상 3층(연면적 7354㎡) 규모로 조성돼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이재명 정부들어 검찰개혁 논의에 속도가 붙으면서 ‘자치경찰제도’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검찰개혁을 통해 수사·기소권한을 분리하면 수사를 담당할 경찰의 권한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해결할 방안 중 하나가 자치경찰제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경찰의 “비대화‘를 거론하며 “경찰 권력 집중 문제는 자치경찰제도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현재 국가경찰 중심의 ‘절충형 자치경찰제’를 운영하고 있다. 2020년 12월 경찰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됐다. 경찰 조직은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한 단일 지휘체계에서 국가경찰·자치경찰·수사경찰로 분리됐다. 국가경찰은 정보수집, 대테러, 주요 행사 경비, 외사 등 국가차원의 사안을 처리한다. 자치경찰은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경찰로 지역 주민의 생활과 직결된 민생 치안을 담당한다. 수사기능만 떼어낸 수사경찰은 국가수사본부로 분리됐다.
원칙적으로 자치경찰제에서는 시·도 자치경찰위원회가 시·도 경찰청을 지휘해야 한다. 그러나 절충형 자치경찰제에서는 인사나 예산 등에 미치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여전히 국가경찰과 인사·조직이 섞여 있기도 하다.
검찰개혁으로 경찰의 권한이 커질 것에 대비해 자치경잘체를 ‘실질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지난 16일 국회에 제출한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경찰의 권한 집중 견제를 위해선 실질적인 자치경찰제 시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치경찰제도는 크게 일원화 모형과 이원화 모형으로 나뉜다. 일원화는 인사·조직은 국가나 지방정부 중 한 곳이 통제하고 일부 기능을 다른 곳이 가져가는 것이다. 이원화는 국가와 지방정부 모두 각자의 경찰권을 보유하는 방식이다. 최근 자치경찰제 논의는 통상 이런 일원화 형태에서 이원화 모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두고 진행 중이다. 윤 후보자도 “향후 자치경찰제 본연의 취지를 구현하기 위해 보다 실질적인 조직·인사·예산 권한을 갖는 이원화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특별자치시·도 등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를 하고, 그 성과를 보아 가며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원화 체제는 대표적으로 서울·제주·세종형 모델이 있다. 서울시가 학술용역을 통해 발표한 ‘서울시 모델’은 안보·정보·외사 등 국가 차원의 치안 업무는 국가경찰이 맡고 자치경찰은 시·도 경찰청을 넘겨 받아 일상과 밀접한 생활안전 치안 서비스를 맡는 방식이다.
제주형 모델은 국가경찰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지방정부에 별도에 자치경찰대를 두고 이들이 주민 생활과 밀접한 영역의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위생·환경 등 지역에 맞는 분야에 대해 특별사법경찰관을 운영해 일부 수사와 단속 업무를 맡는다. 세종시에서 연구된 ‘세종형 모델’은 국가경찰의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등 지역 관련 치안 사무를 지방정부가 넘겨 받고, 자치경찰이 지역 거점의 ‘커뮤니티 경찰센터’를 중심으로 예방 순찰 등을 맡는다. 대신 112신고는 국가경찰이 처리한다.
자치경찰제에서는 지역 맞춤형 치안서비스를 할 수 있다. 반면 국가경찰 중심으로 경찰이 움직이면 지역별 상황을 반영해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단점도 있다. 우선 지방정부의 빈부 격차에 따라 지역 간 치안 격차도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자치경찰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어도 지방정부에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완전히 분리하면 경찰 전체의 범죄 대응 역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이스피싱처럼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에는 초기 단계부터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자치경찰제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지방정부 중심의 자치경찰제도를 운영하다 범죄 대응 등을 이유로 국가경찰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은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자치경찰제의 장·단점을 모두 보고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다양한 모델마다 장단점이 있고 실제 제도로 운용될 수 있을지, 어떤 안을 채택할지 등은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수사·기소 분리 때문에 자치경찰제 강화를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사 주체인 경찰의 권한 강화가 우려된다면 국가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하거나 검찰의 보완 수사권을 두는 등 내외부의 견제 수단을 두는 것이 적합한 처방이라는 것이다. 자치경찰제가 실제 필요와 효율 때문이 아닌 정치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온 논의라는 비판도 있다.
정순관 전국시도자치경찰위원장협의회장은 “현재는 자치경찰 없는 자치경찰제라는 모순이 있다”며 “자치경찰은 주민들의 수용에 맡게 지방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 정부의 예산 지원 등을 통해 운영하면 지역별 격차 없이 치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치경찰제는 매우 값비싼 제도로, 기존의 국가경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없다”며 “오랜 시간 지속하고 있는 제주형 자치경찰을 우선 확대해 실질화하면서 자치경찰제도를 운영하는 경험을 쌓아가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일곱 살 내게 우상이 생겼다. 구두쇠 엄마를 몇날 며칠 졸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을 손에 넣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카세트로 서태지 음악을 틀어댔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안무를 따라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서태지 흉내를 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서태지가 되어 노래와 안무를 뽐냈다. 내가 하도 서태지를 좋아하자 서울 사는 이모는 당시 서태지가 자주 착용했던 모자와 비슷한 베레모를 선물했다. 나는 신이 나서 모자를 쓰고 다녔다. 잘 때조차 그 모자를 벗지 않았다. 누구도 모자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 모자에 달린 가격표는 절대 떼서는 안 되었다. 서태지가 그렇게 쓰고 다녔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의 돋보기를 훔쳐 쓰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난 알아요’를 쉴 새 없이 외쳤다. 도수가 맞지 않는 돋보기가 어질어질 현기증을 일으켰다. 대롱대롱 매달린 가격표가 내 멋의 정점이었다. 종이로 된 가격표가 바람에 날리며 모서리로 내 얼굴을 찔러 댔다. 세차를 하고 있는 친척 오빠 앞에서 서태지를 보여 주었다. 오빠는 낄낄 웃으며 서태지 아니고 ‘수퇘지’라고 나를 골려 댔다. 나는 약이 올라 오빠를 흘겨봤다. 마실을 다녀오던 외할아버지가 다가와 내게서 돋보기를 벗겨 냈다. 어른 물건을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는 꾸지람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내가 혼이 나는 중에도 오빠는 계속 수퇘지 타령을 하며 나를 놀렸다. 씩씩대며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노리고 있던 건지 가위를 들고 다가와 내 모자에 매달린 가격표를 싹둑 잘라 버렸다. 순식간에 당한 뺑소니였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무너졌다. 정말 내가 수퇘지가 돼버린 것 같았다.
중학생 때 봉사활동 간 시설서 맡은 절망의 냄새…이듬해 장애 판정을 받고 그 냄새에 갇혀 살았다그 후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를 주문처럼 부르며 결심했다, 어떻게든 일어서 살아가기로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들었다. 그렇게 아꼈던 모자가 더는 서태지스럽지 않았다. 나는 모자를 내팽개치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세상이 끝난 것처럼 엉엉 울었다. 내가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엄마가 다시 실로 가격표를 엮어 모자에 달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모자와 가격표가 분리되는 순간 모자는 그저 평범한 베레모가 되었다. 그러자 서태지를 향한 마음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흥이 식어 버리자 “난 알아요”가 나오지 않았다. 보물처럼 여겼던 서태지 카세트테이프에 먼지가 앉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를 선언하기도 전에 나는 팬을 은퇴했다.
그즈음 동네에 길을 잃은 낯선 이들이 방문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들은 대다수가 노인이었고 바싹 말라 행색이 초라했다. 자신들이 찾아가는 곳이 어딘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단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근교를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동네 어른들은 그들의 목적지가 어딘지 알았다. 시내와 떨어진 외딴 터에 양로원과 종교시설이 들어섰다. 시설을 향한 주민들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시골 노인들에게 양로원은 자식들이 부모를 고려장 시키는 곳이었다. 행려병자나 장애인들이 전국에서 그 시설로 모여들었다.
내가 시설에 방문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체험 학습 때였다. 학교는 일 년에 한두 번은 시설을 방문해 견학을 시켰다. 그곳에 도착하면 우리는 커다란 강당에서 영상물을 시청해야 했다. 내용은 다리 밑에서 장애인을 돌보던 한 남자의 일생이었다. 마당에는 그의 동상도 있었다. 시설은 가톨릭 신부의 도움으로 확장되었다. 거대한 부지에 건물들이 계속 들어섰다. 나는 매해 그곳을 방문하며 그 과정을 보았다.
90년대 말 금융위기가 나라를 흔들었다. 간혹 땟국물 줄줄 흐르는 장발의 남자가 동네를 돌며 쌀을 구걸하고 다녔다. 어른들은 시설에서 시킨 것 아니냐며 수군댔다. 소문으로는 시설 앞에 매일 아침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버려진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루머는 아니었다.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주기적으로 순서를 정해 시설로 봉사활동을 보냈다. 주로 양로원에 배치되어 식사 배식을 돕고 건물 청소를 했다. 봉사활동 전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도 여전했다.
양로원은 본관에서 언덕을 넘어가야 했다. 부지는 나날이 넓어지고 없던 건물이 새롭게 들어섰다. 무표정한 수녀님들이 감시하듯 우리를 내다봤다. 양로원에 도착했다. 사실 우리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어린 학생들에게 시킬 일이 뭐 그리 많겠는가. 그저 명목상 봉사활동이었을 뿐이다. 인솔 교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표백제와 노인들의 체취가 뒤섞인 냄새가 났다. 날카로운 악취가 미간을 꾹 찔렀다. 나는 숨을 참았다. 코를 쥔 동급생들도 있었고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애들도 있었다. 이상스럽게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방마다 깡마른 노인들이 빈 동공으로 방문자를 흘깃 살폈다. 어디선가 텔레비전 소리가 흘러나왔다.
봉사자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손걸레를 들고 다니며 청소를 했다. 우물쭈물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점심 배식이 시작되었다. 우두커니 서 있던 학생들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 반찬은 기억나지 않지만 국은 멀건 된장국이었다. 오염된 공기 중에 음식 냄새까지 더해지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봉사자 아주머니들이 능숙하게 배식 지시를 했다. 식판을 받아 노인들에게 배달했다. 어느 방에서 다리가 없는 남자가 두 팔로 기어 나와 식판에 코를 박고 된장국을 떠먹었다. 그의 입에서 침과 국물이 뒤섞여 주르륵 흘렀다. 나는 식판을 나르는 척하다가 밖으로 도망쳤다. 음식 냄새를 맡으니 속이 뒤집혔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신물이 올라왔다. 코에서 표백제와 된장국 냄새가 떠나질 않았다. 속이 진정되지 않아 싸갔던 김밥도 먹지 않고 자판기에서 콜라만 뽑아 마셨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나는 된장이 들어간 음식을 먹지 못했다. 된장 냄새만 맡아도 표백제 냄새가 나며 속이 뒤집히고 구역질이 났다.
이듬해 나는 장애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시각 장애인이 될 거라고? 내가 왜?’
절망의 올가미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조여 댔다. 무지했던 나는 완전히 실명하게 되면 평생을 시설에 수용돼서 표백제 냄새가 밴 흙탕물 같던 된장국이나 마시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참한 미래가 예상되자 하루하루가 절망스러웠다.
2000년 서태지가 ‘울트라맨’을 외쳤다. 나는 그 노래가 세상을 저주하는 주문처럼 들렸다. 한때 우상이었던 그가 또다시 유일한 구원자였다.
“울트라맨. 어렸을 적 내 꿈은 울트라맨…”
복잡한 머릿속과 마음을 털어내고 싶었다. 기도문처럼 울트라맨을 불렀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를 장애인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품에 끼고 있다가 본인이 죽으면 어디 시설에 들어가든지 형제들에게 의탁해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암담한 미래가 나로서는 그저 혼란스러웠다.
명절 전날이었다. 나는 외갓집에 엄마 심부름을 갔다. 마당을 들어서며 인기척을 내려 하는데 열린 창으로 어른들의 이야기가 새어 나왔다. 내 이름이 거론되고 완전히 눈이 멀면 어쩌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누군가 읍내 침쟁이 남봉사 얘기를 꺼냈다. 그는 용한 침쟁이로 소문이 나 가정을 이루고 생계를 책임지고 산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혼란했던 마음을 정했다.
소리 나지 않게 마당을 되돌아 나왔다. 속으로 울트라맨을 불렀다. 조금씩 걸음에 속도를 높이며 입으로 울트라맨을 노래했다. 손으로 뺨을 훔치며 비명처럼 울트라맨을 외쳤다. 그때였다. 절망과 울분이 내 안에서 깨져 나가며 굳건한 의지 하나가 자리 잡았다. 결코 표백제 냄새 밴 된장국이나 받아먹는 미래를 살지 않으리라. 그날 엄마에게 장애인학교로 떠나겠다고 통보했다. 어떤 기술이라도 배워 내 밥벌이를 하고 살겠노라 말했다. <시리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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