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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향한 차별·편견 증폭한 ‘고마쓰가와 사건’ 유학 때 접한 뒤 한국에 알리고 피해자 구명 노력 68년 귀국 뒤엔 국민학교 개명운동 이천오층석탑 환수 운동 등 펼쳐
‘북의 가족과 서신 교류’ 이유로 95년에 간첩으로 몰려 3년 수감 83살에 ‘용비어천가’ 역주서 출간
박창희 선생님(1932~2025년)은 한국외대 재직 시절 50대 나이에도 축제 때마다 학생들과 단축마라톤을 뛸 정도로 심신이 건강하고 장신에 강골이셨다. 뜻하지 않게 간첩 누명을 쓰고 투옥되어 3년 만에 나오신 이후로 30여년간 재야 학자로서 민족문제 연구와 실천적 행동을 마다하지 닥터제프
않으셨으며, 수년 전 병마가 깃든 후에도 끝까지 책과 펜을 놓지 않으시다 지난 8일 오전 선종하셨다.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78년 한국외대에 입학하여 가면극연구회에 들어갔을 때다. “오로지 문화 활동으로서 탈춤, 나는 그것을 고집한다.” 지도교수였던 선생님은 공연 때마다 한복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고사에 임하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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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창희 교수. 심규호 교수 제공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고쿠민가코(국민학교) 생도로 도지사상을 받은 수재였던 선생님은 해방이 되자 당혹감에 사로잡혀 일종의 자기분열을 일으켰다고 한다. 게다가 해방 후 정국 혼란과 연이은 전쟁은핵융합에너지관련주
청년 박창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일본행을 택한 선생님은 일본 제국주의의 본색과 식민지 민족 말살 정책의 실체를 알게 되고, 민족문제에 평생을 헌신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일본에서 히토쓰바시 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도립대학에서 석사를 받은 뒤 히토쓰바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선생님은 일본 학계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주식매매사이트
알려진 하타다 다카시, 우에하라 센로쿠, 니시 준조 교수를 만나면서 민족과 나라의 문제를 고민하며 사고의 깊이를 더해갔다.
1958년 선생님은 일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이른바 고마쓰가와 사건을 통해 재일동포의 현실을 직접 목도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민족의 실체를 이루고 있는 민중 현실”을 알게 되었다. 고마쓰가와 고교에서 일어난 살인고려아연 주식
사건 범인은 재일동포이자 학생회 회장이었던 이진우였다. 일본 신문은 매일 조선인에 대한 편견, 차별, 질시, 그리고 혐오와 증오의 발언을 내뱉었고, 고등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선생님은 최소한 상고를 통해 재심의 기회를 주기로 작심하고 이진우 부친 이름으로 상고하는 한편 ‘한국일보’에 기고해 이 사건을 국내에 알린 데 이어 일본과 한국에서 2만5천여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일본 법무대신에게 제출했다.
비록 소년 이진우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이 사건은 한국과 일본에서 재일동포 문제를 최초로 부각시키고 선생님 개인에겐 민족과 민중의 문제를 결합시키는 한 계기가 되었다. 민족과 민중, 민족과 나라, 민족의식과 민족사상. 이는 선생님의 뇌리에서 평생 벗어나지 않은 학문적 문제의식의 본질이자 화두였다.
지일, 친일, 반일, 극일.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관련해 떠오르는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활동한 한일농촌우정문화교류, 독도탐사 및 지신밟기, 국민학교 개명운동, 마쓰시로 대본영 탐사, 이천 오층석탑 환수운동, 오사카 코리아타운 지신밟기, 마쓰모토 도래인 축제 참가 등등은 모두 지일, 친일, 반일의 결합에서 나온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지일은 일본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일본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천왕제와 신도라는 문제의식이 대표적이다. 친일은 일본의 문제를 자각하고 있는 새로운 일본인과 연대하는 것을 말한다. 반일은 독도의 문제, 징용의 문제, 마쓰시로 대본영의 문제 등을 적확히 지적하는 것을 말한다. 선생님은 이 셋의 결합이 바로 일본과 대등하게 만나 선린의 이웃나라로 나아갈 수 있는 첩경임을 알려주셨다.
고 박창희 교수. 심규호 교수 제공
물론 1968년 귀국해 선생님이 이화여대와 한국외대에서 쌓은 학문적 업적도 대단하다. 하지만 이는 필자가 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고려시대를 귀족제 사회로 보는 기존 학설에 반대하고 관료제 사회라고 주장한 것과 학생들에게 직접 보고 읽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 ‘사료국사’를 편찬해 교재로 사용했다는 점은 말하고 싶다.
1995년 선생님은 뜻밖에도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국가보안법의 희생자가 되었다. 당시 검사는 북한에 계신 셋째 형과 서신 교류, 국민학교 개명운동이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은 서신교류만을 인정하고 3년6개월 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3년 만에 집행정지로 출소하셨다. 국가보안법에 따른 조작 수사와 협박과 구타에 의한 폭력은 한 인간과 그 가족을 피폐화시키고, 우리 사회를 거듭 후퇴하게 만들었다. 한평생 민족을 연구하고 행동으로 실천했던 이에게 국가는 오히려 폭력을 휘둘렀다.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애쓰셨던 문제도 민족과 나라, 민족사상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여든이 넘은 2015년에 마지막 저작으로 ‘역주 용비어천가’(전 2권·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를 펴냈다.
“세종은 나라를 자강, 자존으로 명나라와의 책봉 체제를 형해화하고 ‘훈민정음’으로 모든 신분과 계급을 초월한 통일적 문화공동체를 만들어갔지요. 세종은 군사주권을 튼튼히 장악하여 영토를 보존하고 국가를 당시 세계사의 보편국가로 승화시키고, 사람의 생명을 중시하는 사상원리로서의 불교를 가치로 삼았죠.”
어리석은 제자는 세종이 보여준 민족의식을 통해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민족과 함께 번영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우리들에게 남겨진 유업이라 생각한다. 이어받을 책무는 크고 능력은 미치지 않기에 선생님이 보여주신 발분저서(發憤著書·분발하여 글을 짓는다)의 자세로 나아가야만 하지 않을까?
심규호/제주국제대 교수·별꼴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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