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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사태 또는 사북항쟁으로 불리는 사건이 있다. 신군부의 계엄령 치하였던 1980년 4월 국내 최대 민영 탄광이었던 강원 정선군 사북읍 소재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광부와 가족 6,000여 명이 경찰과 대치하며 충돌했다. 회사의 비인간적인 착취와 어용노조의 부당한 처사에 분노하며 일어난 시위였지만 광부들은 폭도, 빨갱이로 몰려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노동운동의 의의를 가린 광부들의 폭력 행위 탓에 사북사건은 아직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사북사건을 제대로 알고 오리지날 양귀비
있는 사람도 드물지만, 사료가 충분치 않은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도 쉽지 않다. 29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은 사북사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북 출신으로 오랫동안 해당 사건을 연구해 온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의 제안으로 대학 후배인 박봉남 감독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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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0 사북'을 연출한 박봉남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27일 전화로 만난 박 감독은 “2019년 사북사건 40주년을 앞두고 객관적인 기록 차원에서 영화를 만들자고 한 것이 시작이었는데 애초 계획인 3년을 훌쩍 넘겨 6년이 지나 개봉하게 됐다주가연계증권
”고 말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돼 한국경쟁 장편 부문 대상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았다.
사북사건은 박 감독이 조사할수록 규정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핵심은 정부·기업이라는 권력의 착취에 맞서는 노동자의 저항이지만, 실제로는 광부와 노조, 그들의 가족, 경찰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사건의 실질민박사
적 책임자인 정부와 회사가 뒷짐 진 상황에서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돼 오랜 기간 반목이 이어진 상태였다. 영화에서 ‘사북항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감독은 “항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한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기에 보다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려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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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에 출연한 전 동원탄좌 광부 강윤호씨. 1980년 당시 군사재판에서 2년형을 받아 복역했던 그는 2022년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강씨의 유죄 입증 증거로 채택된 관련자의 증언이 고문으로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앳나인필름 제공


1970년대 탄광의 노동 환경은 처참할 정도로 열악했다. 매년 200명 안팎의 광부가 근무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동원탄좌는 특히나 사측의 착취가 심한 곳이었다. 광부들은 비가 새고 겨울이면 수돗물도 안 나오는 판잣집에서 살았다. 물이 부족해 석탄의 새까만 때도 제대로 씻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회사의 착취 탓에 혹사를 당하고도 손에 쥐는 월급은 적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 요구를 무시했고, 부정선거로 조직된 어용노조는 노골적으로 회사 편을 들었다.
1980년 4월 21일 집회를 염탐하던 형사가 자동차로 광부를 치고 도망간 사건이 발생했다. 분노한 광부들은 사북지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이튿날 탄광을 점거한 채 경찰 진압을 막는 과정에서 순경 한 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광부들은 도망간 노조위원장에 대한 분풀이로 그의 아내를 집단 폭행하기도 했다. 영화는 폭력의 정당성에 대해 묻는다. 박 감독은 “노조위원장의 아내를 집단 폭행한 건 우발적이었다 해도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제대로 사과한 주체가 없다는 건 한 번쯤 짚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군부가 공수부대를 투입하기 직전 강원지사의 중재로 24일 새벽 합의사항이 타결되며 사북에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으나 계엄군은 약속을 어기고 같은 해 5월 6일부터 200여 명의 광부와 아내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해 잔혹하고 치욕스러운 고문을 가했다. 어떤 이는 고문에 못 이겨 엉뚱한 동료를 밀고하기도 했다. 그중 28명이 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영화에는 비인간적인 고문과 폭행을 당한 이들, 특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희생당한 무고한 여성들의 가슴 아픈 증언이 이어진다.



문창재(오른쪽 두 번째) 당시 한국일보 기자가 1980년 4월 강원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현장에서 광부들의 노동환경을 취재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는 160여 회의 촬영과 100여 명의 인터뷰를 통해 완성됐다. 당시 시위 진압에 투입돼 광부들에게 폭행을 당했던 경찰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했고, 고 이재기 전 노조위원장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2년간 공을 들이기도 했다. 당시 사북사건을 취재한 본보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박 감독은 “안경다리 투석전 촬영을 비롯해 당시 사건 초반 상황을 제대로 취재한 매체는 한국일보가 유일하다”면서 “한영희 전 한국일보 사진기자의 현장 사진과 문창재 전 한국일보 기자의 사건 취재, 광부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쓴 연재 기사에서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2년 전 별세한 문 전 기자는 생전 인터뷰로 영화에 출연했다.
박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 ‘광주’와 ‘사북’이 연결돼 있다는 점에 주목해주기를 주문했다. 광부들과 협상 타결에 실패했다면 계엄군이 투입돼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졌을 거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북사건은 불길했던 시대의 전조로서 비상계엄령하에서 개인들이 얼마나 무참하게 짓밟히는지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1980년 4월 21일 강원 정선군 사북읍 소재 동원탄좌 소속 광부들이 안경다리 위에서 진입을 시도하는 기동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박 감독은 1980년 사북을 바라보는 고민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고민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총량은 점차 늘고 있지만 우리는 1980년 계엄령의 시대, 야만의 시대를 온전히 건너지 못한 것 같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분노의 화살을 쏘아 댄다면 누가 이득을 보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북사건과 관련해 누가 책임져야 할지, 누가 사과해야 할지, 이런 비극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