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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농공 분야의 성립

한국 농공 분야의 구심체로서 그 소임을 다해 온 우리 학회가 창립 된지 어언 반세기가 흘렀다. 지난 50년 동안 농공 분야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담당해온 역할과 업적은 아무리 칭찬해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농공 인들의 자부심이요 자랑이다. 그러나 반백년 동안 숨차게 달려온 농공을 되돌아보면 뭔지 모를 안타까움과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느끼게 된다. 왜 그럴까?
과학기술의 특성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자신의 범주에 추가시키며 또 스스로의 구조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과 여러 면에서 일치한다. 안타깝게도 농공 분야는 이 같은 과학기술의 특성을 충족시키는데 충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년의 경지에 이른 오늘에 와서 뜻하지 않은 성장 통을 느끼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농공학회 창립 50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자신의 성장과 새로운 모습의 창출을 위하여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할 계기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이런 뜻에서 여기에서는 농공 분야의 성립에 대한 철학적 논거를 제시하고, 공학의 변천 속에서 농공의 위상을 조명하여 자신의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의 농촌과 정책을 분석함으로서 장차 농공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살펴봄으로써 농공의 미래를 조망해 보기로 한다.
모든 과학기술체계는 그것이 독립적이고 타당한 과학의 일원이기 위한 성립요건을 갖추고 있을 때 그 존재가 인정된다. 농공 분야도 이 같은 성립요건들이 잘 갖추어져 있음이 입증 될 때에만 분과학문 또는 전문분야로 인정됨은 물론, 스스로의 생존과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성립 요건은 자신을 진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으며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정립하는데 있어 방향타의 역할도 할 수 있다.
분과학문의 성립 요건에 대한 과학 철학적 논의는 매우 다양해서 어느 한가지의 통일된 정설은 없어 보인다. 여기에서는 비교적 널리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되는 학문 분류의 이론들을 종합하여 다섯 개의 요건들로 정리하여 앞으로 본 논의의 중심으로 삼고자 한다.
첫째 요건은 연구대상과 체계의 독립성이다. 학문 분야의 목적, 대상, 방법, 기초, 근본원리, 전제, 분류가 독특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독립한 분과학문이나 기술의 위상은 기존의 학문이나 기술들이 다루지 못한 실재, 사실, 혹은 탐구대상을 확보해야만 인정을 받는다. 농공 분야는 농촌공간을 그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이점에 대해 부정하거나 이의를 다는 이는 아무도 없다. 또한 그 체계는 농촌공간별 개선 목표를 한 축으로 하고 이를 위한 기술 영역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교직체계로 짜여 있어 다른 과학기술체계와는 전혀 별개의 독립체계를 갖추고 있다.
둘째 요건은 자신의 과학기술체계가 기존의 다른 과학기술체계와 모순되지 않는 정합성을 가져야 하고, 교육하고 연구할 대학 내 학과가 존재하여야 한다. 이미 농공 분야는 전국 11개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4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어 그 충족요건을 채우고 있다.
셋째 요건은 농공관련 기관과 기업의 존재이다. 어떤 과학기술체계를 이용하여 사회에 직접적으로 봉사하는 국가기관이나 사립기관이 있어야함은 물론 그 기술체계로 업을 삼는 기업들이 존재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림부의 정책국, 한국농촌공사 등이 있어 농공과학기술체계를 이용하여 국가 시책을 입안, 수행하고 있고 민간 부문에도 연구소, 설계용역회사, 시공회사 들이 활동 하고 있다.
넷째 요건은 학회의 존재이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인적 자원들이 모여 그 과학기술체계를 대표하고 발전을 도모하며 친목을 다지는 조직이 학회이다. 한국농공학회는 이미 2,000여 회원을 확보한 대형 학회로서 매년 학술발표대회와 6회의 논문집 및 5회의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다. 한국 농공 분야의 대표 격인 한국농공학회는 2007년에 50주년을 맞아 다른 어떤 학회와 비교해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전통을 갖고 있다.
다섯째 요건은 사회적 인증과 역사이다. 어떤 과학기술체계가 이상에서 논한 네 가지의 요건을 갖추었다 해도 사회적으로 인증 받지 못하면 독립된 한 분야로서 성립할 수가 없다. 모든 과학기술체계는 자신의 탐구대상을 확보하는데 있어 배타적이다. 다른 학문이나 기술이 다루지 않거나, 다루지 못하거나,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탐구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면 고유의 탐구대상에 대한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농업생산기반이 “우리 것”이라는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되는 것일까. 그 정당성은 그 논의가 정당화 될 만한 응분의 역사를 가짐에 따라 획득된 특권이다. 우리의 역사에 서기 334년 벽골제의 설치사업으로부터 조선조의 제언사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농공 분야의 사실들이 정사로 기록되어 있고 그 것들이 오늘 날까지 그 맥을 면면히 이어 오고 있다.
7.2 농공 분야에 대한 성찰

농공의 성찰을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자신을 반성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전체 공학의 변화 속에서 한국 농공의 위상을 성찰하는 일이다. 농공이 전체 공학 분야의 한 부문임은 자명하므로 농공의 앞날은 전체 공학의 변화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체 공학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조망 속에서 한국 농공의 과거와 앞날을 내다본다면,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자신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생명의 관점에서 농공을 조명하는 일이다. 농공 분야는 농업·농촌이라는 생명의 창조와 보전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산업의 기반 과학기술 체계이다. 더욱이 실용과 실천을 중시하는 특성을 갖는 과학기술체계여서 과학 철학적 분석방법의 적용을 소홀히 해 온 면이 있었다. 따라서 농공 분야가 자기 성찰의 출발점을 생명체의 원리에 입각한 철학적 논거에서 찾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가. 공학의 변천과 농공
공학(Engineering)은 역사적으로 군사공학(Military Engineering)을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성곽, 도로, 교량 등의 건설에 의한 적의 방어, 군대와 장비의 이동 등 여러 가지 군사적 목적 달성에 필요한 공학을 군대에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 후 민간을 위한 건설이 늘어나면서 이에 필요한 공학의 필요성이 커지게 되자 군사공학에 대응하여 민간공학(Civil Engineering)이란 이름이 나타나게 되었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Civil Engineering을 토목공학이라고 번역하게 된 것이다.
역사시대 이후로 공학 활동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공학, 산업화시대의 공학, 정보화시대의 공학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생존을 위한 공학은 식량생산을 위한 것과 적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한 것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도구적인 면에서는 인력을 주로 사용한 특징이 있다. 산업화시대의 공학은 전기, 기계의 등장과 함께 시작 되었고 전력 및 기계의 사용과 관련되며 인류의 욕구충족과 생활 편의를 위한 소비재의 대량생산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정보화시대의 공학은 컴퓨터의 사용과 함께 하며 환경, 생태 등이 중시되는 공학이다.
그런데 식량생산을 위한 공학에서는 인류와 자연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었지만, 산업화시대의 공학은 인류의 번영을 위하여 자연의 파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보화시대의 공학은 자연과 모든 생물까지를 어우르는 공학 활동이고 점점 더 이것이 중시되고 있다. 또한 식량생산과 산업화시대의 공학은 하드웨어적인 것이지만 정보화시대의 공학은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학의 역사는 삼국시대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궁궐 및 성곽의 축조, 사찰의 건립, 농사를 위한 치수와 이수로서 군사공학(Military Engineering), 종교공학(Religious Engineering), 농업공학(Agricultural Engineering)으로 공학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역사에서 대규모 건설은 대부분 재정과 노력동원의 능력이 있는 국가나 종교적 헌신으로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우리 역사를 통해 볼 때 군사적 목적의 공학과 종교적 목적의 공학은 어느 기간에만 융성하고 사라졌지만 농업 목적의 공학은 농업이란 산업에 연결되어 1960년대 초까지 공학의 원조역할을 하였다. 특히 1908년에 전라북도 옥구군에 서부수리조합을 설치하여 현대적 관개사업이 시작되었고, 그리하여 저수지와 수로의 건설을 하는 관개사업이 약 50여 년간 공학을 주도하며 기술자들을 배출하고 타 토목분야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의 농공 분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농업이라는 생명 산업에서 농촌공간을 탐구와 사업의 대상으로 하여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생존을 위한 공학, 산업화시대의 공학이라는 공학 변천사에서 농공은 큰 흐름에 순응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위상과 특성을 발휘함으로써 국가발전에 헌신하여 온 것이다. 공학의 변천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키워드는 농공과학기술체계에 대한 반성과 신뢰와 희망이다.
공학 변천사는 미래의 공학은 정보화이며, 정보화는 컴퓨터, 환경, 생태에 기반을 둔 소프트웨어 중심의 공학임을 말해주고 있다. 농공은 바로 이점에 소홀하였다. 지난 몇 년간 새만금 논쟁에서 보았듯이 환경과 생태보전 기술의 접목이 미흡했던 농공기술체계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농공이 역사를 통하여 반성해야할 점은 미래 공학의 큰 줄기인 정보화, 환경, 생태에 대하여 농공분야가 소홀히 했던 점이다. 공학 전반의 큰 흐름에서 뒤떨어지는 것은 자신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우리는 이점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하며, 미래의 농공이 극복해야 할 제일의 기술적과제가 바로 이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농공 분야가 국가 생존에 필수적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이 역사적으로 증명되는 한 자신은 영원히 발전할 것이라는 신뢰를 가질 수 있음이 공학의 변천사는 말해 주고 있다. 현재의 농공 과학기술 체계를 컴퓨터 활용, 환경과 생태의 보전을 중시하는 지식기반 기술체계로 개선하여 한층 더 version up 된 새로운 체계로 발전시킨다면 한국 농공 분야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것은 정보화시대를 향하여 도도히 흐르는 미래 공학의 시대정신을 받아들였을 때 가능한 일인 것이다. 희망을 현실화하는 일은 우리 농공 인들에게 부과된 성스러운 책무이다.

나. 생명의 관점에서 본 농공
생명체의 원리를 자기 성찰의 한 방편으로 하는 것은 현상의 외적 측면 보다 그 본질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생명체는 다양성, 통일성, 연속성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생명체의 원리적 측면에서 자신을 반성해보고자 한다면 생명체의 특성인 다양성, 통일성, 연속성이 자신과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밝히고 이를 통하여 스스로의 과거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생명체의 다양성이라 함은 생명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매우 다양하다는 의미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150여만 종 이상의 동식물들은 상호간 복잡다기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과학기술체계도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자연계의 생명체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기본법 제27조에 의거하여 작성한 과학기술체계는 대분류 19개, 중분류 177개, 소분류 1,229개 등으로 되어있다. 사회통념의 규범이라 할 법에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체계들이 분류되어 있고 이들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생성과 소멸이 이어져 갈 것이다. 농공 분야는 농림·수산분야의 대분류 아래 농공기술 분야로 중 분류되어 있고, 농업기계분야를 포함하여 농업토목, 농촌계획·환경기술 등 7개의 분야로 소 분류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농공과학기술체계도 수많은 과학기술체계 중의 하나로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면서 과학기술체계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는 생명체라 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는 생식, 진화, 유전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생명체가 갖는 통일적 특성임과 동시에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을 구성하는 개개의 분야들도 각기 독특한 과정을 거쳐 강력한 새 이론이나 기술체계에 의해 과거의 것들을 대체함으로써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과거에 각광을 받던 과학의 분과들이 오늘날에는 그렇지 못하게 되거나 소멸해 버린 이유는 스스로 생식, 진화, 유전의 생명 원리에 충실치 못했기 때문이다.
농공 분야 역시 오랜 역사를 통하여 추구하는 이념과 목표, 사업대상이 변하여 왔으며, 사회적 기여도 또한 부침을 거듭하여 왔다. 오늘날 우리 분야가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바로 자신의 과학적 체계와 기술적 적용 범위를 스스로 확장, 발전시키는 것이 미흡 했고(생식), 새로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이론과 기술 개발에 소홀했으며(진화), 자신이 갖는 이념과 철학을 정비하여 새로운 체계로 재편하여 계승(유전) 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성찰과 미래를 위한 준비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생명체가 세대를 이어 진화와 유전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연속성의 원리 역시 과학기술체계에도 적용된다. 모든 기술 체계는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연구와 사업 대상을 확보하고, 이념과 학문체계, 연구방법론 등을 유지 발전 시켜 후대에 전승함으로써 그 학문과 기술의 연속성을 유지한다. 자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과학기술 체계에서도 생명현상의 연속성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둘러싼 내외 환경의 변화에 스스로 진화하여 적응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소멸되어버릴 운명에 놓여 있다. 과거의 유수한 과학기술체계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가거나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쉽게 목도한다. 농공 분야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오늘날 농공인 대부분이 자신의 과학기술체계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농공 인들이 자신의 전공에 대한 유전자격인 이념과 체계의 정립과 연구방법론 등에 대한 개선과 확장 그리고 체계화에 어떤 노력을 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농공 분야는 생명계의 일원인 생명체의 한 구성 분과임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생명체의 기본 전제인 항상성의 유지에 미흡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농공인 대부분이 자신의 과학기술체계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을 느끼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생명체의 원리에 충실치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농공 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생명체의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상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통한 자신의 전공에 대한 이념과 체계의 정립, 새로운 연구 및 사업대상의 확대를 통한 성장 동력 창출, 그리고 대학교육의 혁신, 농공공동체의 강화 등은 바로 생명체 원리 구현을 위한 구체적 내용 들이다.
농공 분야는 물, 흙, 생산기반, 농촌주택, 농촌 환경 등 횡적 범주와 이들에 대한 지식이나 요소간의 관계에 대한 이론의 변화와 발전을 의미하는 종적 변동으로 구성된 과학기술체계이다. 과학기술이 횡적팽창과 종적 대체의 과정을 계속하지 않는 것은 마치 생명체가 호흡과 신진대사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신의 전공에 대하여 느끼는 위기감은 공학이 지니는 역사성 속에서 농공이 갖는 긍정적 위상에 대한 인식과 신뢰가 부족했으며,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반성에 투철하지 못했고, 탐구대상과 체계의 종적, 횡적 범주 확장에 무심했던 데서 온 것이었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듯 농공학도 자신을 성찰하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했음에도 우리는 그것에 소홀 했던 것이다.
7.3 미래의 농촌공간과 농촌정책

농공 분야는 공익성이 매우 강한 과학기술체계이다. 순수과학이 아닌 응용과학으로서 농공은 가깝게는 국가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기술수단으로서 멀리는 미래의 이상적인 한국 농촌공간의 모습을 제시하는 과학기술로서의 체계라 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응용학문이 그러하듯이 농공학도 사회에 대하여 공급자와 선도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국가의 필요에 부응하여 농공만이 갖는 독특한 이론과 기술을 제공해야 하는가 하면 새로운 농공학적 비전을 제시하여 국가 정책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설정되도록 선도해야 하는 것이다.
농공 분야가 자신의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고, 미래의 생존과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기본 전제는 자신의 탐구 대상인 농촌공간에 대한 시대적 욕구나 기대치가 무엇이며, 국가의 농촌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는 어떤 정책적 수단을 갖는지 등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이는 농공 분야 종사자들의 책무이며 권리이다.

가. 농촌공간 정비에 대한 사회적 요구
사회가 요구하는 농촌공간은 정부의 정책 수행을 통하여 구현되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농촌 프로그램의 개발, 조직의 확대개선, 시스템의 도입과 개량 등 소프트웨어적인 수단과 이들의 작동에 필요한 기반시설, 장치, 도구 등의 하드웨어적인 수단이 동시에 필요하다. 농공 분야는 바로 이 같은 하드웨어적 수단의 계획, 설계, 시공, 운영과 유지관리, 평가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과학기술체계이다. 이 같은 하드웨어들은 바로 사회적 요구의 반영이어야 하며 시대적 기술철학의 구현이어야 한다.
농촌공간은 세 개의 큰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업생산을 위주로 하는 산업 공간, 농업인과 도시민을 위한 거주 공간, 그리고 국토·환경보전 공간 등이 그들이다. 각각의 공간들은 각기 독특한 기능들을 발휘함과 동시에 상호간 관련을 가지면서 통합된 농촌공간을 형성한다. 전통적으로 농공에서 다루어 왔던 산업 공간은 농산물, 임산물, 수산물 등의 생산기능을 갖는 공간이다. 미래에도 이 공간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생활공간은 농업인과 농촌거주 도시민들의 거주 공간 기능을 하는 농촌마을, 국민들에게 휴식과 재생산의 기능을 하는 농촌경관, 그리고 역사적으로 우리의 민족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전통·문화 보전과 계승 기능 등을 포함한다.
국토·환경보전 공간은 농촌의 기반이 되는 산과 물과 대기를 포함하는 공간으로 자연보호와 홍수·토양침식방지 등의 기능으로 국토를 보호하고, 수자원을 함양하고 보전 하며, 수질·대기·토양 등 환경을 보전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이 국토·환경보전의 기능은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피할 수 없는 농산물 수입 개방에 따라 정부로서는 농촌 정책에 필요한 재정의 확보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근거는 바로 농촌공간이 갖는 다면적 기능의 국민적 이해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농촌정비는 농업생산기반의 정비와 도시에 뒤진 생활환경을 정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농촌을 종합적으로 정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농촌 정비는 과거의 사업에 풍부한 자연환경의 보전,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보전, 우량한 거주환경창출, 도시와의 교류기반 정비, 지역자원 순환이용시스템의 재구축 등이 요구되고 있다. 다양한 자연환경과 접하는 거주 지역으로서 국민에게 널리 개방된 21세기형 농촌공간의 창조로 도시와 농촌과의 공생과 교류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농촌 정비의 사회적 요구는 과거의 정비내용에 이 같은 새로운 수요를 통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정부의 비전과 농촌 정책
정부에서 발표한 21세기 한국 농촌의 비전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즉, 농업을 지속가능한 생명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농촌공간을 살고 싶은 쾌적한 삶의 터전으로 일구며, 농업인의 소득을 올려 잘사는 농업인이 되게 하자는 데 정책의 궁극적 목표를 둔다는 것이다.
농촌지역개발 활성화는 농촌다움을 갖춘 쾌적하고 활력 넘치는 농촌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는 농촌을 삶의 공간, 여가·휴양의 공간, 친환경·신산업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 같은 목표달성을 위해서 거점 개발 형 지역개발, 기초생활여건 개선, 사람·자본 유치 등의 사업을 추진한다.
거점개발 형 지역개발전략은 소 도읍을 거점으로 배후지역과 함께 균형 있게 개발하고,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편리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정비함을 말한다. 이를 위해 소 도읍을 거점기능을 갖춘 농촌지역의 산업·문화 중심지로 육성한다. 농어촌의 배후 마을은 3～5개 마을을 생활권 등을 고려한 권역단위로 묶어 “농촌마을 종합개발”을 추진한다. 전원생활·휴양·자연환경보전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친환경 육성 형, 전통 보전 형, 자연생태 보전 형 등으로 특성화한다.
또한 농촌다움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농어촌 생활환경정비사업을 개선한다. 인프라 시설 위주로 지원하던 정주 권 개발 사업은 녹색 댐 조성, 수변 공간 정비 등 다양한 경관 개선 지원 사업을 병행한다. 빈 집을 철거한 후 소공원, 마을광장 조성 등 농촌다움과 쾌적성을 증진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하여 지원한

다. 다양한 농촌정주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전원마을 가꾸기 사업을 추진하여 맞춤형 전원주거(주고)단지, 체재 형 주말농원, 은퇴농장 등을 도입한다.
기초생활여건의 개선은 농촌에 거주하는데 큰 불편이 없도록 농가주택·교통·상하수도 등 농촌의 기초 생활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가주택 개량 등을 통해 농촌경관에 어울리는 주거 공간 조성한다. 농촌 빈집을 매입·철거하여 주차장, 마을광장 등 마을공동 생활공간으로 활용하고, 캠핑장 등 농촌관광시설로 조성한다. 마을 회관을 개축하여 영·유아 보육·건강관리실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농촌마을 다기능 시설을 설치한다.
공공교통체계 구축, 상하수도 확충 등을 통한 농촌생활 편익 증대, 오지에도 공영버스가 운행되도록 하며, 면지역 농촌주민 90%가 안전한 식수를 공급 받을 수 있게 한다. 2013년까지는 시·군 당 1개소씩 매립시설, 재활용시설 등 폐기물 처리시설을 설치한다. 마을 연결 임도를 공도 화하고 마을 상류 계류에 사방댐시설을 확충한다.
투자유치·인력유입촉진은 도·농 교류 촉진 및 사람·자본 유치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으로 과감한 규제 완화, 인센티브 제공으로 투자유치를 활성화 하는 것이다. ‘도농교류센터를 설치하여 도시와 농촌 간 교류확대 및 농촌투자유치 활성화를 중점 추진케 하며, 지자체를 중심으로 농촌투자유치설명회를 통해 사람과 자본의 농촌유입을 유치하기 위한 활동을 강화한다. 도시민의 기호에 맞춘 다양한 전원주거공간을 제공하고, 농업테마파크, 수변공간정비 등을 통한 도시민 유입을 촉진시킨다. 농촌에 도시민이 정착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전원주저단지, 정원 형 실버타운, 은퇴농장 등을 조성한다. 농업관련 소재를 이용한 농업테마파크, 경관이 수려한 저수지 및 마을 소하천 등을 친환경적으로 정비하여 관광객을 유치한다.
농촌관광활성화는 2013년까지 농촌관광을 통해 연간 150만 명의 도시민을 농촌으로 유치, 농외소득 증대의 견인차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관광마을 조성을 지원하여 농촌관광의 거점으로 활용한다. 시·군당 5～7개 마을을 거점마을로 육성하여 2013년까지 총 1,000개의 특색 있는 농촌관광마을을 조성한다.
농촌이 지닌 어메니티를 증진하고 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확충하여 농촌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독특한 지형과 전통적 특성 등 농촌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관직불제를 도입한다. 향토문화자산을 농촌관광에 접목시키고, 마을종합개발사업을 마을 가꾸기 사업에 활용한다. 마을 꽃길 조성, 담장 조성, 마을 숲 조성, 마을 안내판 설치 등을 추진한다.
농촌관광을 선도할 전문 인력 양성시스템을 구축한다. 농과 계 대학 교과과정에 반영하거나 학과설치를 유도한다. 농촌관광마을 지도자를 보좌할 마을 사무장제도를 도입한다. 농촌관광 수요 창출을 위한 다양한 홍보 및 마케팅 전개함과 동시에 농촌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도 정비를 추진한다.
농공단지 등 다양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농공단지를 농촌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한 거점단지로 발전시킨다. 2013년까지는 394개소의 농공단지를 확충한다. 지역 특성에 맞는 단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역 특산물 가공·유통업체를 적극 유치한다. 특산단지는 지자체 주도하에 목공예, 죽 세공품, 모시 등 지역 이미지가 강한 소수 정예품목 중심으로 활성화한다. 농촌관광마을을 대상으로 소규모 농 특산물 가공시설을 지원한다.
향토 산업 육성을 위하여 지역의 특유한 전통고유기술, 토산품, 관광문화 상품 등 향토의 지적재산을 발굴하고 산업화로 연결하여 부가가치 창출하고, 상품성 향상을 위한 지역 브랜드 개발 및 품질관리 강화하며, 지역전통 및 특산품과 관련된 향토문화축제를 발굴 지원한다.
농업생산기반정비는 삶터·일터·쉼터가 어우러진 친환경적 농업생산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우량농지를 중심으로 정비하되, 농촌지역개발과 연계토록 한다. 생산기반의 내용은 재해 대응능력의 강화, 수자원 개발 및 이용, 효율적인 생산 공간 조성 등이며, 편안하고 편리한 생산 공간, 삶의 공간 조성 및 농촌의 다면적·공익적 기능을 유지하고 농가인구 감소 및 노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에 대처하도록 한다.
재해대응능력 강화는 노후 및 재해취약 수리시설에 대한 개보수를 시행하여 시설물 기능회복 및 재해대응능력을 강화하는 것과 상습침수 농경지에 대한 배수개선사업을 조기에 완료하여 집중호우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노후 수리시설의 개보수로 재해예방 및 시설의 안전과 기능을 회복한다. 완공위주의 사업추진 및 소 유역단위로 수원공과 용수로를 패키지화하여 종합적인 개보수계획 수립·추진하며, 물 관리 자동화, 흙 수로의 구조물화를 통한 용수절약 및 유지관리비를 절감한다. 홍수배제 능력이 부족한 저수지 및 배수장 시설에 대한 보강을 추진하고, 침수에 취약한 저지대 배수장의 펌프교체 및 배수장, 변전소의 이설을 추진한다. 재해 취약시설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확대, 시행 및 퇴적 량 조사를 통한 체계적인 준설을 한다.
집중호우 및 태풍으로 인한 농경지 침수피해 예방을 위한 배수개선 사업을 조기에 완료한다. 2011년까지 배수개선 목표면적 188천 ha을 완료한다. 경지정리 및 하천 정비 사업을 연계 추진하여 사업효과를 극대화한다. 설계기준에 미달되거나 노후화된 시설은 배수장 증설, 배수로 규모 확대 등 보강개발과 병행하여 추진한다. 환경친화적 기법을 적극 반영하여 자연생태를 보전하고 농촌지역의 쾌적성을 유지하도록 한다.
수자원 개발 및 이용 사업은 수리 안전답 율 제고와 농촌용수의 안정적인 개발·이용·보전체제를 구축할 목적으로 추진한다. 이를 위해 농촌용수개발사업은 농업진흥지역 내 우량농지 위주로 친환경적으로 추진한다. ‘13년까지는 농업진흥지역 771천ha에 대하여 100% 수리답 화하고 10년 빈도 수리안전답율도 71%까지 제고시킨다. 수확량 증가, 직파재배 등 영농환경의 변화에 따른 농업용수 수요증가(30%)와 농촌지역의 생활·공업·환경용수 등 다양한 용수수요에 대비한다. 기존시설의 보강과 통합 등 급수 체계 개선을 통한 농업용수의 안정적인 개발·이용·보전 체계를 구축한다. 이를 위해 기존 저수지 등 수리시설의 능력을 검토하여 저수지 더 쌓기 등 보강과 여유 수자원의 효율적 배분·이용을 위한 용수이용체계개편을 통해 용수공급 능력을 확대한다.
효율적 농업생산 공간 조성사업은 농업진흥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비 절검과 영농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계화 경작 로, 대 구획 경지정리, 밭 기반 정비 등 체계적인 농지정비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일반경지정리는 2004년 봄까지만 추진하여 720천 ha를 완료하고 50 ha 이상 9천 ha는 대 구획 경지정리로 통합하여 추진한다. 대 구획 경지정리는 기계화·규모화 영농에 꼭 필요하고 보전가치가 높은 집단화된 우량농지 위주로 사업계획을 재정비하여 추진하며, 밭 기반정비는 집단화되고 주산단지 조성이 용이한 지역위주로 추진하여 사업효과를 제고시킨다. 기계화 경작 로 확포장사업은 소규모 분산투자를 지양하고, 농어촌도로 등 상위도로와 연결하는 등으로 도로의 기능이 제고되도록 한다.
쌀 재협상과 FTA 등 농산물 개방이 확대되고 있고, 대내적으로도 농업인구의 고령화와 농산물 소비자의 기호변화 등으로 우리의 농업과 농촌이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농업의 재도약을 위해 지금까지 살펴본바와 같은 내용의 농촌 종합대책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관련 법률을 제정하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농공과학기술체계의 특성상 스스로의 발전은 정부의 농촌 정책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펴본 정부의 대책은 우리 농공에 가장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농촌정책의 전환에 따른 미래 농촌의 모습은 하나의 시대적, 사회적 요구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정책의 기조는 과거에 비하여 농촌의 역할이 매우 강조되고 중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농공학적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사업 중점이 농업생산기반의 정비에 있었다면, 새로운 정책에서는 종합적 농촌정비도 정책의 한 축을 이루면서 상당한 정도의 무게 중심 이동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농공 분야는 이 같은 정책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이루어져야하고 어떤 부문은 이미 이루어져 있어야 할 상황이다.
7.4 농공 분야 발전을 위한 과제

농공 분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성장, 발전해야 할 가치 있는 기술체계이다. 농공은 옛날부터 당당한 과학기슬로서의 위상을 보전하여 왔다. 그러나 지금의 국내외적 상황과 과학기술의 독특한 속성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만족하고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한 발전을 꾀하지 않는 과학기술은 머지않아 소멸하고 말기 때문이다. 농공은 이 같은 자기반성과 미래준비에 소홀하였다. 지금은 미래 상황에 알맞은 패러다임의 정립으로 농공과학기술체계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탐구대상 영역을 확장하여 성장 동력을 확보하며, 대학교육의 혁신과 학회 중심의 화합을 통하여 미래에 대비한 전략적 접근을 준비해야 할 때 이다. 여기에는 끊임없는 시간과 인력의 투입이 필요하며, 깊고 고통스러운 사색의 과정이 필수적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가. 새로운 농공 패러다임의 정립
어떤 과학기술체계의 성립요건이란 문자 그대로 요건일 뿐이다. 이들 요건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들을 묶어주는 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중심 이념이 있어야하는데 그것이 바로 패러다임이다. 패러다임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분명하게 규정된 법칙, 이론적 가정을 말한다. 패러다임의 뜻은 매우 다양한데 일반적으로는 어떤 특정 집단이 공통으로 소유하는 사고의 형식을 말한다. 특정 시대를 지배하는 이념, 가치, 규범, 접근방법 등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며, 대상에 대한 분석단위, 근본가정, 주요명제, 개념화, 실천 론 등의 패턴 또는 모형을 일컫기도 한다.
어떤 분야의 패러다임은 다양한 방법에 따라 정립할 수 있다. 즉, 경험적 방법, 과학기술 요소의 반영, 근접 타학문의 모색, 성립요소의 반영, 철학적 이론 근거 등 여러 방법 중 하나의 방법을 택하거나 여러 방법들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정하기도 한다. 농공학과 같은 응용과학의 이념은 시대의 요구와 주변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따라서 농공의 목표체계를 지배하는 기본 이념의 도출은 시대상황을 잘 분석하고 미래를 조망하여 이들을 잘 조합함으로써 가능하다.
농공과학기술체계의 패러다임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보나 지금까지는 이를 정립하여 가시화하는 일을 소홀히 해온 감이 없지 않았다. 그 결과 농공을 구성하는 각 세부 전공들은 그들이 농공을 구성하는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분야의 정체성을 논함에 있어 전문분야들의 단순집단인지, 통합집단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모래와 자갈을 합하면(단순집단) 어떤 특성이나 활용성을 보이지 않지만 여기에 시멘트와 물을 섞어 비비면(패러다임의 적용) 콘크리트라는 독특한 물성을(통합집단) 생성하여 유용하게 쓰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동시에 수많은 오합지졸 보다는 소수이지만 체계화되고 정신적으로 뭉친 집단이 더 강한 것과 같은 의미를 갖기도 한다.
농공을 구성하는 하위 전문분야들 간에는 농공의 성격, 목적, 접근 방법 등에 대한 공유부족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각 전문분야는 자신들의 원천 학문으로 환원되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수문학은 농공 고유의 학과목은 아니지만 농공의 지향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수 불가결의 전문 분야이다. 만약 농공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가 수문학 연구를 함에 있어 연구의 목표나 방법론을 농공 고유의 패러다임에 따르지 않고 수문학 자신의 목표를 따른다면 이 연구는 이미 농공 분야 연구가 아닌 수문학 연구인 것이다. 따라서 하위전문분야의 종사자들은 소위 노력의 분담(division of labor)에 충실하여야 한다. 즉, 농공에 종사하는 수문학연구자는 농공고유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수문학이라는 방편으로 그 노력의 일부를 분담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은 자연스럽게 응용연구의 본질에 충실하자는 것으로 귀결되며, 농공을 위한 수문학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말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 농공 인들은 알게 모르게 이런 어리석음을 범해 온 것이 사실이다. 패러다임은 이같이 하위 학문들이 농공 본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절차와 방법을 통해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규범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같은 패러다임의 정립에 소홀해 왔다.
여러 학자들이 제시하는 21세기 한국 농업의 이념은 새로운 농공 패러다임의 정립에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즉, 값싸고 질 좋은 국민식량을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공급하는 생명산업, 국토환경을 아름답고 안전하게 보전, 역도시화 현상을 수용할 수 있는 기능을 농촌이 담당, 지속적으로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에 기여하는 역할, 농업 역시 미래지향적인 지식산업으로 변모 요망 등이 그것이다. 이때의 키워드는 '안정과 안전', '식량공급', '국토환경', '아름다움', '역도시화 수용', '지속적'등이다. 이상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우리 농공이 지향해야 할 바와 하위목표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상의 개념들을 적용하여 본다면 미래의 농공 분야란 농촌공간을 구성하는 산업기반, 거주기반, 자연환경, 어메니티 등 각 요소들의 특성 및 상호간의 관계를 과학적 방법으로 조사, 분석하여 도출한 지식과 이것을 응용한 기술체계를 지속농업체계를 위한 기반정비, 농촌의 다면적, 공익적 기능 발현과 보전 등에 적용함으로서 살기 좋은 농촌공간의 창출과 국토보전에 기여하는 생명산업기반 공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과거의 농공 분야 패러다임이 농업생산기반정비로 농업생산을 증대하여 농촌개발과 농업인의 복지향상에 기여하는 농업기반공학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면, 미래의 것은 농촌공간이 갖는 유·무형의 자원을 친환경적으로 발굴, 정비하여 농촌공간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농촌과 도시의 국민 복지향상에 기여하는 생명산업기반공학으로 자리매김하여야 할 것이다.

나. 농공 성장 동력의 창출
시대 상황의 변천에 따라 과학기술의 횡적 범주가 확대, 심화되는 것이 과학기술의 속성임을 이미 지적 한바 있다. 이는 농공부문 사업이 물과 흙을 기초로 한 수리사업에서 경지정리, 수리시설자동화 등으로 이행하고, 다시 농업생산 기반정비 사업에서 농촌주택, 마을배수, 경관개선 등 정주 권 사업으로 이행되는 확대 발전의 길을 따른다는 점을 말한다. 또한 연구 대상도 초기의 농업용수의 확보와 배분을 중심으로 한 농업수리 위주에서 농촌생활 개선을 중심으로 한 농촌계획분야로, 이어서 농촌 유역환경부문의 연구에서 농촌소득 증대에 초점을 맞춘 농촌관광부문으로 중심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대적 상황의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정부 정책을 수동적으로 수행한 것이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탐구의 대상이 새롭게 확대되는 동안 농공은 학회를 중심으로 외형과 내용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지속하여 왔다.
농공부문의 횡적 범주를 확대 심화하는 일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선도하는 일도 중요하다. 농공 인들이 미래의 변화에 대응하는 기술수요를 미리 예측하여 능동적으로 개발연구를 수행한다거나, 농촌공간의 개선에 필요한 정책건의를 지속적으로 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렇게 하면 농공은 활력을 얻게 되고 발전을 기약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탐구 영역의 개척이 연구영역이나 사업영역의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각 탐구 대상에 대한 새로운 연구방법론의 적용, 순수과학으로부터의 신 이론이나 기술의 도입 등도 훌륭한 성장 동력원이 될 수 있다.
“리우 환경선언”에서 언급된 Agenda 21은 오늘의 시대상황을 대변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준다. Agenda 21은 세계가 과학기술에 기대하는 점에 대하여 몇 가지를 기술하고 있다. 즉, 육지, 해양, 대기 그리고 이들과 맞물려 있으면서 지구 계를 형성하는 물, 영양소의 생물 지구 화학적 순환과 에너지 흐름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는 기본적인 생태학적 과정에 관한 더 많은 연구와 원격 탐지 장치, 무인 감지기구, 계산과 모사 능력 등 현대적, 효과적, 효율적인 수단의 적용을 통하여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과학은 자원 이용의 효율성을 개선시키고 새로운 개발전략, 자원, 대체수단을 찾는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기대하며, 과학은 공업, 농업, 운송업에서의 보다 덜 집중적인 에너지 이용을 포함하여 자원을 보다 덜 집약적으로 이용하는 추세를 재평가하고 장려해 줄 것을 원한다.
과학적 지식은 지구 계의 현상과 장래의 전망에 대한 과학적 평가를 통해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목표를 형성하고 뒷받침하는 데 적용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이상의 논의(논술)에서 우리는 '물과 영양소의 순환', '에너지 흐름', '생태학적', '원격탐지', '무인감지기구', '계산', '모사능력', '자원 이용의 효율성', '자원의 집약적 이용', '평가', '지속 가능한 개발', '지구수용능력' 등의 키워드를 추출할 수 있다. 이들 키워드를 현대사회가 과학기술에 기대하는 바라고 한다면 농공의 연구 대상도 이 같은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면서 탐색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발하기 위한 방향은 우리나라의 농어촌정비법이나 일본의 농업토목학회 연구결과를 참고하여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농어촌정비법에서는 '농업생산기반', '농어촌생활환경정비사업', '농어촌휴양자원 정비사업', '한계농지정비사업'등이 규정되어 있으며, 일본 농업토목학회는 탐구대상을 농촌공간에 존재하는 '물', '흙', '생산기반', '환경' 등을 탐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농공과학기술체계의 연구 영역과 사업영역에서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기존의 연구영역에서는 그 대상을 크게 ① 농지의 구성주체로서 토양, 물, 지형, 대기 등, ② 식량생산 시설로서 포장자체와 수로, 농로 등, ③ 포장체계의 제어, 관리시설, 구조물, 기기, 기계에 관한 것으로서 물 관리를 위한 각종 수로시설, 구조물, 시설영농, 저장시설, 수송체계 등, ④ 시설 내의 동식물에 관한 것으로서 각종 작물, 각종 가축 등, ⑤ 생활에 필요한 시설, 주거(住居)로서 식량생산과 관련 산업의 부대시설, 사회적, 경제적 인간의 행동 등, ⑥ 농촌정보, 법규, 법률 등으로서 각종 정보의 생산, 전달 시스템, 이들이 작동 될 수 있게 하는 법률 등, ⑦ 이상의 대상들 간의 제 관계로서 개개 대상의 각기 최대한의 기능 발휘, 대상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최적으로 발휘, 균형 있는 결합관계나 상호보완 관계 등으로 구분하여 나열할 수 있다. 이상의 여러 영역 중 ①～③ 까지는 비교적 연구가 되어 있는 영역이나 ④~⑦ 영역은 앞으로 개발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는 연구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농공의 사업영역에는 크게 농업생산기반정비사업, 농어촌생활환경정비사업, 농촌 어메니티 개발사업, 농촌정보화사업 등이 있다. 농업생산기반 정비 사업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① 농업용수개발사업으로서 대중소규모 용수개발, 지표수보강개발사업 등, ② 배수개선사업으로서 지표배수개선사업, 지하배수 개선사업 등, ③ 경지정리사업으로서 일반경지정리, 대 구획경지정리, 간이경지정리 등, ④ 지표수 보강 개발 사업으로서 수원 공 시설규모 확장이 있으며, ⑤ 대단위농업종합개발사업, ⑥ 밭 기반정비 사업 등이 있다. 이들 사업은 모두 전통적인 농공사업영역으로서 영역의 확장에는 한계가 있는 사업들이다.
농어촌생활환경사업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① 생활용수개발사업으로서 일반지하수개발, 지방상수도개발사업 등, ② 도로 정비 사업으로서 농어촌도로정비사업, 경작 로 확포장사업 등, ③ 정주기반확립과 낙후지역개발사업으로서 주 생활권개발, 농촌종합개발, 도서종합개발, 어촌종합개발 등, ④ 마을정비 및 주택현대화사업으로서 문화마을 조성, 주거환경개선, 패키지마을조성, 산촌개발사업 등, ⑤ 자연환경보전사업으로서 마을하수도, 면단위하수시설, 폐기물처리시설, 오염소하천정비사업 등이 있다. 여기에서 ① 및 ② 영역은 사업내용 면에서 개발의 여지가 많지 않은 기존 사업영역이며 ③～⑤는 비교적 새롭거나 아직 개발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사업영역이라 할 수 있다.

다. 대학에서의 농공학 교육 혁신
농공은 교육을 통하여 생성, 유지, 발전되고 있다. 교육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며 후대에 전승되는 것이다. 대학은 농공학 교육의 장으로서 연구와 교육 그리고 인간적 유대감의 형성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교수들은 과학자로서 자신의 전문분야를 연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자로서 현장에서 근무하게 될 농공기술자와 농공과학을 전승, 발전시킬 학문하는 자를 동시에 양성해야 한다. 교수들은 학문공동체를 통해서 서로 다른 학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정치적으로 확인한다. 그들은 대학 내에서는 물론 대학 밖에서도 집단의 일원으로서 학문의 개별성을 주장하고 집단적인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일을 한다. 이렇게 보면 대학이나 학회가 농공을 위해 지니는 사명은 참으로 중차대하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의 농공교육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교육의 목표, 과정, 방법의 체계에 해결해야할 갈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농공교육의 목표가 농공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인지, 농공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다수는 농공기술자인 반면 농공 과학자의 수요와 수용능력은 그렇게 크지 않다. 대략 농공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자의 수요가 100이라면 농공과학자의 수요는 5를 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학교육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야 하는지는 자명해 진다. 농공교육은 국내적으로는 사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춤은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기술자를 양성하는데 그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교과과정은 교육을 통해 양성해 내려는 기술자의 자질과 품성을 상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짜여 있다. 전국 11개 대학에 설치된 농공관련 학과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교양과목, 기초전공과목, 전공과목이라는 체계 속에서 각기 필요한 과목들을 나열하였는데 많은 부분이 학문적 성격의 과목들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기술자를 양성해야 하는데 기술대신 학문을 주로 가르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은 학문적인 지식과 직무수행의 실무능력 간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으로 가정하는 실증주의적 습관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왔기 때문이다.
실증주의(positivism) 사상은 19세기 이후 과학과 공학의 협조가 왕성해지면서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철학의 강력한 신조로서 등장한 것이다. 이 모델은 19세기 말부터 공대, 농대, 의대, 간호대, 법대, 사대, 경영대 등 현대 대학 내의 주된 직업학교에서 통용되는 교육적 지침으로 제도화 되었다. 학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면 이를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응용할 수 있으리라고 본 실증주의 인식론에 대해 최근에 이를 반박하는 주장들과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실 대학에서는 농공졸업생들의 현장 실무능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과거에는 이 같은 지적에 심각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으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앞으로 수용하게 될 공학교육인증제에서는 기술자 양성프로그램을 요구하고 있고, 따라서 앞으로의 교과과정은 학문이 아닌 기술을 가르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실증주의적인 인식론에서 실천의 인식론으로의 철학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육방법면에서는 종합적 사고와 문제해결의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설계교육이 중시되어야 한다. 학생에게 기술에 대한 과학적 체험보다는 실천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는 과정의 수련을 통한 지식의 습득보다는 정답이 없는 과정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창출해가는 과정을 경험케 하는 것이 교육 후의 직무 적응이나 창조적 능력 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의과대학에서의 의사교육 방식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 학회를 통한 농공 공동체 강화
어떤 분과학문이나 기술이 그 정당성과 독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학문이나 기술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분과 학문은 개별적인 학자들의 산물이 아니라 특정한 구조 속에서 동일한 목적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창조물이다. 따라서 공동체가 존재함으로써 공통의 목표, 방법적인 기준, 평가의 기준, 행동규범, 사회적 영향력 등을 발전시킬 수 있다.
농공 공동체의 주요 구성원은 학자 및 교육자, 현장기술자, 그리고 행정가 등이다. 이들은 각기 상이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으나 농공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동일한 이념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공을 거대한 생명체로 볼 때, 학자와 교육자는 머리에 해당될 것이다. 대학에서는 응용과학인 농공의 발전을 위한 연구와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 후계자들을 양성한다. 현장 기술자는 바로 손과 발이다. 농공의 첨병인 이들은 가장 실천적인 방법으로 농공의 이념을 구현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농공 행정가들은 심장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농공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원이다. 사업의 공공적 성격상 농림부의 한 부서로서 우리나라 농촌의 향상을 위하여 농공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정책의 개발과 예산의 배분, 집행의 감독을 맡고 있다. 이들 모두는 농공이라는 생명체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로 상호보완이 절실한 운명적 관계로 맺어져 있다.
학회와 대학은 학문공동체의 대명사이며 그 주요 기능은 지식의 창출, 교육, 훈련 등 이다.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규칙적으로 접촉할 필요가 있다. 학자들끼리는 물론 기술자들과의 토론과 논쟁을 통하여 상호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각기 추구하는 가치체계가 다르므로 어떻게 보면 이질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농공학자와 농공기술자는 공통의 탐구대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도 훼손할 수 없는 선천적 혈연관계임을 말해준다. 다만 주요한 것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계속하는 일이며 이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과학자와 기술자의 근본적인 차이는 그들의 가치관에 있다. 과학자들은 그들의 탐구대상에 대한 인식, 즉 지식과 이론, 관계 등에 더 관심이 있다. 그들은 탐구 대상을 인식하고 평가하는 틀을 마련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는 마치 고기와 그물의 관계와 같다. 고기가 탐구 대상이라면 그물은 과학에 해당된다. 즉 탐구 대상을 이해하는 틀이 그물인 것이다. 반면 기술자는 어부다. 고기를 잡으라 하면 당연히 기술자가 같은 조건에서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 과학자는 고기 잡는 데는 큰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탐구 대상을 아는 것과 탐구 대상을 알기 위한 틀과 방법을 아는 것은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대학교수가 농공이론에 밝으니 농공 설계와 시공에도 능통할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며, 마찬가지로 어떤 기술자의 기술이 좋으니 그는 이론에도 밝고 연구도 잘할 것이라는 것도 역시 환상인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차이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심장과 손발이 따로 놀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사업 발주자의 입장인 농림부와 수주자의 입장인 농업기반공사간의 관계는 분명히 세간의 발주자와 용역업자 관계와 구분될 것이다. 공공적 계약 관계와 함께 동일 목표인 농공 이념의 실천자로서의 동지적 관계가 공존해야 할 것이다. 농공의 머리와 심장이 부조화에 빠진 경우에도 그렇다. 농공 행정의 새로운 비전과 추진방향의 설정은 어느 한 그룹만의 일이 아니다. 기술자들로부터는 현장의 경험을, 그리고 교수들로부터는 이론적 뒷받침을 지원 받아, 이들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치열한 예산투쟁으로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여 이를 배분하며, 시행기관이 엄정한 집행을 하도록 조정, 감독해야 할 것이다.
이제 농공 인들이 화합해야할 당위성과 화합의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그 당위성은 화합하지 못하면 그 폐해가 크며, 그것이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데 있다. 만의 하나 농공 내부에 부조화가 존재한다면 이는 자신의 몸에 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감염된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며, 이를 방치할 경우 큰 병을 앓게 될 것이다. 병이 나게 되면 자신이 고통 받게 됨은 물론, 치열한 적자생존의 산업부문간 경쟁에서 외부에 약점을 내보이게 될 것이다.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타 부문은 이를 틈타 우리 고유영역을 잠식하려 할 것이고, 이에 대해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생존 위협에 직면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화합과 단결을 이룩하게 될 것인가? 네 가지가 요체이다.
첫째는 구성원간의 화합은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의 공존공영을 위한 기본적 조건이라는 인식이다. 농공이라는 거대한 산업영역이 발전적 방향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옮기려면 대다수 구성원 스스로의 자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농공인 모두가 서로 화합하는 마음으로 단결되어 있을 때 집단의 의사결정은 쉬워지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힘이 강력해 진다. 자율적 실천의지는 기쁜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우러나는 법이다.
둘째는 상대방을 제대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공을 구성하는 그룹간의 괴리가 커질수록 그룹간의 문화적 이질감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물론, 각 그룹은 나름대로의 고유한 문화가 있을 것이다. 교수사회에서의 행동양식과 사고의 방식은 기술자 사회의 그것들과 다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기술행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농공이 갖는 고유한 이념은 이들 이질적 문화를 초월한다. 행정가이든, 기술자이든, 교수든 각자가 하는 일은 모두가 농공 기술체계를 활용하여 한국 농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이를 확장하여 인류의 복지를 증진하는 숭고한 이념의 구현에 궁극적 목표를 두고 있다. 동일한 목적과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 모두는 선천적, 태생적 동지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는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용인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셋째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방을 인정하며 농공 전체를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농공을 구성하는 여러 기관이나 조직들이 있지만 각기 나름대로의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들 각 자의 역할과 기능을 인정하고 서로 북돋아 주는 것이야말로 다양성에 기초한 화합의 정신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각 그룹들이 자신의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농공 전체의 이득을 생각하려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배타적으로 기득권을 고집하면 일시적으로는 자기 그룹의 이익이 보장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타 그룹의 심한 견제로 전체 그룹이 병들게 되고 결국은 모두를 어렵게 만들고 말 것이다. 함께 잘사는 길을 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넷째는 화합에 대한 냉소적 자세가 극복되어야 한다. 이는 어떤 생각을 책임 있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에 의거하고 기생해서 이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화합이 전부냐’, ‘무슨 수로 화합한단 말이냐’ 등 자조적 태도나, 심한 개인주의와 각박한 경쟁체제 속에서 ‘화합은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라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냉소적이고 잘못된 생각이야말로 농공발전의 원천인 화합을 저해하여 결국은 농공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부정적 요소들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긍정적 사고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할 시점이다. 화합이 바로 농공의 미래를 담보하는 원리임을 믿고 이를 실천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조직의 화합과 단결은 그 조직이 지속적 발전과 생존을 보장하는 밑바탕이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잘 해 왔으나 문제점들도 있었다. 국내의 제반 환경과 급박하게 변해 가는 국제적 환경 속에서 우리 농공분야는 갈수록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위기라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등장하고 있다. 지혜와 용기를 모아서 이를 헤쳐 나가야 하지만 그 용기와 지혜를 생성해 내는 바탕은 우리 모두의 화합과 단결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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